《오동나무와 나, 웅크린 쥐》 2025
죽은 집은 오동나무로 다시 태어난다. 도시의 생태계에서 이는 중요한 사실이다. 서울에서 집의 수명은 너무 짧아서 인간만큼이나 천수를 누리는 일이 드물다.
보광나들목과 한남나들목 사이에는 오백년이 넘은 느티나무 서낭당이 있다. 언젠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 남자애들 서넛이 모여 농구를 하는 코트 바로 옆에서 늙은 여자가 제를 지내는 모습을 보았다. 그 장면이 무척 인상깊었다. 막연히 기도하는 사람을 다시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나 자주 지나는 길이 아니었다. 지도 어플로 자주 그 곳을 들여다봤다. 강변북로 위로 조금씩 보이는 나무들 중에 그 나무가 있을 것 같았다. 지도에 표기된 이름으로 검색해보니 무당들의 블로그가 나왔다. 기도를 드리러, 신의 목소리를 좀 더 선명하게 듣고자 마음을 닦으러 가는 곳이라 했다. 한남동, 이태원같은 번화가와 한강 공원 등 많은 것들을 함께 즐길 수 있어 특히 젊은 무당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포스팅에는 열심히 기도드리는 사진과 함께 모시는 신과 신어머니에 대한 감정, 그리고 자신을 찾아오는 고객들에 대한 애정을 비롯해 인근 공영주차장 위치 및 맛집 정보들이 상세하게 적혀있었다.
오동나무는 어디에서나 자란다. 어디에서나 줄기를 만들고 잎을 틔운다. 오동나무는 시멘트를 이기고 태어나 때로는 잘려진 몸통에서도 다시 줄기를 내보낸다. 한남뉴타운으로 불리는 5개의 구역에서 본격적으로 사람이 빠져나가기 시작한 것은 23년 겨울. 보광동이 포함된 제3구역이 진행속도가 가장 빨랐다. 24년 여름 그곳엔 멀쩡한 집과 집을 둘러싸고 무성하게 올라온 식물들, 고양이, 고양이 사료를 먹으려고 모여든 비둘기 그리고 참새, 박새, 직박구리, 까마귀를 비롯한 도시의 새들, 고양이 사료를 든 사람, 배달 오토바이, 순찰을 도는 경찰, 불법주차를 하러 올라온 차량 등이 있었고 버려진 것 중에 부피가 큰 것들은 쇼파, 매트리스, 냉장고, 서랍장, 가장 많은 것은 역시 의자로 보광중앙교회 앞마당에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을 초대해 앉혀도 남을 숫자였다. 이태원역에서 순천향병원을 왕복하는 용산01 마을버스는 몇 개의 정류장을 지나는 동안 아무도 태우지 못했고 당연히 누구도 내리지 않았는데 숙이네닭발 앞을 지날 때는 나를 보고 속도를 늦췄다.
빈집에서는 냄새가 난다. 인간이 살면서 조절하던 적정 온도와 습도의 영향을 벗어나면 집은 쉽게 망가진다. 빈집의 창문은 밝은 대낮에도 모든 어둠을 집어 삼킨 듯 새까맣다. 바깥의 밝음이 안으로 스미지 못 하게 무언가 버티고 선 것처럼. 그런 어둠은 자세히 보기가 무섭다. 빈집 앞엔 사람 키에 웃도는 망초들이 펜스를 치듯 올라온다. 망초나 미국자리공은 그 활기가 징그럽게느껴질 정도로 빨리 자랐다. 여름이 끝나가자 초록 잎에는 자주빛 꽃대가 올라오고 검푸른 열매가 맺혔다. 그 계절 미국자리공은 재개발구역의 주인처럼 보였다. 그에 비해 흰 바탕에 빨간 빗금, 안전제일 글씨가 적힌 비니루는 너무도 하찮았다. 그것들이 나풀거리고 버석거릴 때 거리는 한층 스산해졌다. 제3구역엔 지금 살고 있는 월세집 보다 훨씬 깨끗하고 번듯한 빌라나 다세대 주택이 즐비했다. 아깝다. 이 집들이 죽어 모두 오동나무가 된다니 아깝기 그지없다. 녹색 대문을 타고 능소화가 곱게 핀 연립 앞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이 집에서 아까부터 나를 쫓아오는 저 아기 고양이를 키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식빵 귀퉁이를 잘라 던져줬지만 먹지 않았다.
집 안에 심는 과수의 종류는 제한적이다. 병충해가 적거나 미관상 아름답거나 그런 것들도 이유가 되겠지만 ‘지붕 위에 마른 나뭇가지에는 귀신이 모여든다’ ‘지붕보다 높게 올라가는 나무는 재물을 앗아간다’ 같은 민간신앙에서 비롯된 금기를 따르느라 빈 주택가엔 고만고만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3구역에 주로 굴러다니는 과실은 감과 대추였다. 시간차를 두고 떨어졌을 초록색감과 다 익은 감 그런 것들이 길가에 죄다 터져 있었다. 터진 것 주위로는 새까만 무언가가 기어다니고…할머니들은 계속해서 줍는다. 생활폐기물들로 꽉 차서 걸어다니기도 힘든 골목에서 주머니 가득 조심스레 무언가 옮겨 담는 할머니를 만났다. 뭘 줍고 계신가요? 이건 까마중 열매다. 흰꽃에 검은 열매는 항상 좋은 것. 어떤 할머니는 감나무 열매를 따고 있었다. 아마도 당신이 평생을 살았을 집 담벼락에 꼭 붙어서. 나는 까마중을 한움쿰 쥐어준 할머니를 따라 빈집 앞에 놓인 안락의자에 앉았다. 어설픈 단맛이 났다. 인적이라는 건 얼마나 무서운가. 인적이 끊긴 거리에서 혈액순환과 고혈압 면역력, 신장 질환에 좋다는 까만 열매를 입안 가득 넣고 이 많은 집들은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혹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언제 알게 되는 것일까 생각했다.
오동나무는 그 씨앗을 감쌀 정도의 흙먼지만 있으면 정말 어디에서건 뿌리를 내린다. 뿌리를 내리고 나면 한동안은 평범한 잡초 행세를 하며 자라난다. 오동나무 생명력의 비결은 지나치게 많은 집들이 죽음 그 자체이며 멀리 가지 못하고 재개발구역을 떠도는 집의 영혼들은 반쯤 허물어지거나 싹다 밀렸지만 시공사 건설사 조합원 등의 이해관계로 당분간 태양 비 바람 그런것들만 머무는 곳에서 한계절 사이에 완전히 나무의 외양을 갖추기도 한다. 동시에 오동나무는 그 크기와 상관없이 어느 날 갑자기 완전히 뽑혀 사라지곤 한다. 오동나무를 그니까 사람 키를 훌쩍 넘어섰지만 아직은 푸른끼가 채 가시지 않은 부드러운 몸통을 지닌 오동나무를 뿌리 채 뽑는 일은 어떨까? 서울에서 구조물 해체 작업으로 유명한 사업체를 운영하는 박모 대표는 오동나무를 뿌리 채 뽑는 일이 때로는 지상 8층 규모 건물의 발파해체보다 어려울 때가 있다고 밝혔다.
가을엔 뭐든 쉽게 반대편으로 달아난다. 목 뒤가 따갑게 내리 쬐던 볕이 가시자 한기가 느껴졌다. 열매를 씹다가 잠이 들었나? 검은 것을 입가에 묻힌 채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나는 얼마간 버려져 있었지만 깨끗한 보광동 3 - 금성파크맨션 301호의 부엌에서 깨어난다. 잔뜩 웅크리고 있었는지 온갖 곳이 저리고 아팠다. 오래 살다가 이사를 나간 집인 듯 바닥에는 가구가 놓여있던 흔적이 또렷이 남아있었다. 냉장고, 피아노, 서랍장, 침대, 옷장 그런 것들이 있던 네모진 자리들은 주변보다 어두워서 조금씩 낮게 패인 것처럼 보였다. 가스관이 끊어진 쯤에 동그란 협탁이 놓여있었다. 상아빛이 도는 흰색 협탁 위에 오늘 지상에서의 마지막 태양 볕이 강하게 내리 쬐었고 나는 터무니 없이 아름다운 광경에 넋을 놓았다. 자세히 보니 협탁 위에는 작고 가벼운 무언가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것은 가운데가 접힌 균형잡힌 V모양의 종이로 좌우로 쓰러지고 일어나기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양옆을 손가락으로 꾹 누르니 비로소 안에 적힌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부엌 창문을 열었다. 한강물이 넘칠 듯 가까웠다. 강변 서낭당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기도를 하고 있었다. 분명 느티나무였던 그 서낭당은 이제 거대한 오동나무가 되어 있었고 내가 지켜보는 짧은 사이에 잎이 다 지고 만신의 방울 같은 열매가 가득 맺혔다. 등 뒤로 웅크리고 있던 쥐가 힘껏 달려 현관문을 빠져나가자 멀리서 부서지고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보광나들목과 한남나들목 사이에는 오백년이 넘은 느티나무 서낭당이 있다. 언젠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 남자애들 서넛이 모여 농구를 하는 코트 바로 옆에서 늙은 여자가 제를 지내는 모습을 보았다. 그 장면이 무척 인상깊었다. 막연히 기도하는 사람을 다시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나 자주 지나는 길이 아니었다. 지도 어플로 자주 그 곳을 들여다봤다. 강변북로 위로 조금씩 보이는 나무들 중에 그 나무가 있을 것 같았다. 지도에 표기된 이름으로 검색해보니 무당들의 블로그가 나왔다. 기도를 드리러, 신의 목소리를 좀 더 선명하게 듣고자 마음을 닦으러 가는 곳이라 했다. 한남동, 이태원같은 번화가와 한강 공원 등 많은 것들을 함께 즐길 수 있어 특히 젊은 무당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포스팅에는 열심히 기도드리는 사진과 함께 모시는 신과 신어머니에 대한 감정, 그리고 자신을 찾아오는 고객들에 대한 애정을 비롯해 인근 공영주차장 위치 및 맛집 정보들이 상세하게 적혀있었다.
오동나무는 어디에서나 자란다. 어디에서나 줄기를 만들고 잎을 틔운다. 오동나무는 시멘트를 이기고 태어나 때로는 잘려진 몸통에서도 다시 줄기를 내보낸다. 한남뉴타운으로 불리는 5개의 구역에서 본격적으로 사람이 빠져나가기 시작한 것은 23년 겨울. 보광동이 포함된 제3구역이 진행속도가 가장 빨랐다. 24년 여름 그곳엔 멀쩡한 집과 집을 둘러싸고 무성하게 올라온 식물들, 고양이, 고양이 사료를 먹으려고 모여든 비둘기 그리고 참새, 박새, 직박구리, 까마귀를 비롯한 도시의 새들, 고양이 사료를 든 사람, 배달 오토바이, 순찰을 도는 경찰, 불법주차를 하러 올라온 차량 등이 있었고 버려진 것 중에 부피가 큰 것들은 쇼파, 매트리스, 냉장고, 서랍장, 가장 많은 것은 역시 의자로 보광중앙교회 앞마당에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을 초대해 앉혀도 남을 숫자였다. 이태원역에서 순천향병원을 왕복하는 용산01 마을버스는 몇 개의 정류장을 지나는 동안 아무도 태우지 못했고 당연히 누구도 내리지 않았는데 숙이네닭발 앞을 지날 때는 나를 보고 속도를 늦췄다.
빈집에서는 냄새가 난다. 인간이 살면서 조절하던 적정 온도와 습도의 영향을 벗어나면 집은 쉽게 망가진다. 빈집의 창문은 밝은 대낮에도 모든 어둠을 집어 삼킨 듯 새까맣다. 바깥의 밝음이 안으로 스미지 못 하게 무언가 버티고 선 것처럼. 그런 어둠은 자세히 보기가 무섭다. 빈집 앞엔 사람 키에 웃도는 망초들이 펜스를 치듯 올라온다. 망초나 미국자리공은 그 활기가 징그럽게느껴질 정도로 빨리 자랐다. 여름이 끝나가자 초록 잎에는 자주빛 꽃대가 올라오고 검푸른 열매가 맺혔다. 그 계절 미국자리공은 재개발구역의 주인처럼 보였다. 그에 비해 흰 바탕에 빨간 빗금, 안전제일 글씨가 적힌 비니루는 너무도 하찮았다. 그것들이 나풀거리고 버석거릴 때 거리는 한층 스산해졌다. 제3구역엔 지금 살고 있는 월세집 보다 훨씬 깨끗하고 번듯한 빌라나 다세대 주택이 즐비했다. 아깝다. 이 집들이 죽어 모두 오동나무가 된다니 아깝기 그지없다. 녹색 대문을 타고 능소화가 곱게 핀 연립 앞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이 집에서 아까부터 나를 쫓아오는 저 아기 고양이를 키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식빵 귀퉁이를 잘라 던져줬지만 먹지 않았다.
집 안에 심는 과수의 종류는 제한적이다. 병충해가 적거나 미관상 아름답거나 그런 것들도 이유가 되겠지만 ‘지붕 위에 마른 나뭇가지에는 귀신이 모여든다’ ‘지붕보다 높게 올라가는 나무는 재물을 앗아간다’ 같은 민간신앙에서 비롯된 금기를 따르느라 빈 주택가엔 고만고만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3구역에 주로 굴러다니는 과실은 감과 대추였다. 시간차를 두고 떨어졌을 초록색감과 다 익은 감 그런 것들이 길가에 죄다 터져 있었다. 터진 것 주위로는 새까만 무언가가 기어다니고…할머니들은 계속해서 줍는다. 생활폐기물들로 꽉 차서 걸어다니기도 힘든 골목에서 주머니 가득 조심스레 무언가 옮겨 담는 할머니를 만났다. 뭘 줍고 계신가요? 이건 까마중 열매다. 흰꽃에 검은 열매는 항상 좋은 것. 어떤 할머니는 감나무 열매를 따고 있었다. 아마도 당신이 평생을 살았을 집 담벼락에 꼭 붙어서. 나는 까마중을 한움쿰 쥐어준 할머니를 따라 빈집 앞에 놓인 안락의자에 앉았다. 어설픈 단맛이 났다. 인적이라는 건 얼마나 무서운가. 인적이 끊긴 거리에서 혈액순환과 고혈압 면역력, 신장 질환에 좋다는 까만 열매를 입안 가득 넣고 이 많은 집들은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혹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언제 알게 되는 것일까 생각했다.
오동나무는 그 씨앗을 감쌀 정도의 흙먼지만 있으면 정말 어디에서건 뿌리를 내린다. 뿌리를 내리고 나면 한동안은 평범한 잡초 행세를 하며 자라난다. 오동나무 생명력의 비결은 지나치게 많은 집들이 죽음 그 자체이며 멀리 가지 못하고 재개발구역을 떠도는 집의 영혼들은 반쯤 허물어지거나 싹다 밀렸지만 시공사 건설사 조합원 등의 이해관계로 당분간 태양 비 바람 그런것들만 머무는 곳에서 한계절 사이에 완전히 나무의 외양을 갖추기도 한다. 동시에 오동나무는 그 크기와 상관없이 어느 날 갑자기 완전히 뽑혀 사라지곤 한다. 오동나무를 그니까 사람 키를 훌쩍 넘어섰지만 아직은 푸른끼가 채 가시지 않은 부드러운 몸통을 지닌 오동나무를 뿌리 채 뽑는 일은 어떨까? 서울에서 구조물 해체 작업으로 유명한 사업체를 운영하는 박모 대표는 오동나무를 뿌리 채 뽑는 일이 때로는 지상 8층 규모 건물의 발파해체보다 어려울 때가 있다고 밝혔다.
가을엔 뭐든 쉽게 반대편으로 달아난다. 목 뒤가 따갑게 내리 쬐던 볕이 가시자 한기가 느껴졌다. 열매를 씹다가 잠이 들었나? 검은 것을 입가에 묻힌 채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나는 얼마간 버려져 있었지만 깨끗한 보광동 3 - 금성파크맨션 301호의 부엌에서 깨어난다. 잔뜩 웅크리고 있었는지 온갖 곳이 저리고 아팠다. 오래 살다가 이사를 나간 집인 듯 바닥에는 가구가 놓여있던 흔적이 또렷이 남아있었다. 냉장고, 피아노, 서랍장, 침대, 옷장 그런 것들이 있던 네모진 자리들은 주변보다 어두워서 조금씩 낮게 패인 것처럼 보였다. 가스관이 끊어진 쯤에 동그란 협탁이 놓여있었다. 상아빛이 도는 흰색 협탁 위에 오늘 지상에서의 마지막 태양 볕이 강하게 내리 쬐었고 나는 터무니 없이 아름다운 광경에 넋을 놓았다. 자세히 보니 협탁 위에는 작고 가벼운 무언가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것은 가운데가 접힌 균형잡힌 V모양의 종이로 좌우로 쓰러지고 일어나기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양옆을 손가락으로 꾹 누르니 비로소 안에 적힌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부엌 창문을 열었다. 한강물이 넘칠 듯 가까웠다. 강변 서낭당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기도를 하고 있었다. 분명 느티나무였던 그 서낭당은 이제 거대한 오동나무가 되어 있었고 내가 지켜보는 짧은 사이에 잎이 다 지고 만신의 방울 같은 열매가 가득 맺혔다. 등 뒤로 웅크리고 있던 쥐가 힘껏 달려 현관문을 빠져나가자 멀리서 부서지고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